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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녀의 하루엔 무슨일이 생겼나_1

혼미 육아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중년입니다. 나날이 커가는 각기 다른 세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정신이 혼미한 ‘혼미육아’중이랍니다.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따위는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옳다 그르다는 기준도 나날이 달라지고, 사람마다 달라지니 말입니다.

  내 자신이 납득하고 깨달은 기준이 없는 경우 여기저기 그저 휘둘리다 이도저도 아닌 죄책감만 남으니까 그렇습니다. 그 많은 기준과 방법들에 휘둘리다 보면 끝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스스로를 채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기준은 이 기준대로 저 기준은 저 기준대로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만이 남았던 것이 이제까지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방치 수준을 드러내는 맘 편한 배짱은 또 없습니다.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 정도라도 체크하고 나서야 뭔가 오늘은 죄인까지는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새가슴입니다.



내 다크써클


  오후 6시 반입니다. 조금 있으면 퇴근 하겠다는 김과장의 전화가 올 터인데 저는 비몽사몽이니 큰일입니다. 자꾸 눈꺼풀이 근육을 풀어대며 뻗어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니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게으른 눈꺼풀 자랑을 하는 것은 모두 제 잘못만은 아닙니다.

  지난 밤, 밤새도록 5살 된 막내아이가 열이 올라 칭얼대며 치대어드니 여러 번의 쪽잠으로 피곤을 달래었던 것이 다였습니다. 큰 아이들은 방학이니 늦잠이라도 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막내아이의 열은 내리질 않고, 큰 아이들은 등교 날과 다를 바 없이 일어나 주린 배를 채워달라고 조잘조잘 저를 깨워댑니다.

  어찌어찌 식탁에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올려주고 다시 한 번 침대로 기어들어가려고 했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넓은 거실이 온갖 것들로 그득했습니다. 이것을 외면하고 기어들어볼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 고민을 하는 사이 이미 제 팔다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삐질삐질 땀을 내며 꼬박 두 시간을 치우고 나면 또 다시 먹을 것을 내놔라며 진상을 부리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닙니다. 하루 종일 100원짜리 동전하나 벌지 못하면서도 몸이 녹초가 되고도 또 다시 아이들의 병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100일의 기적이라며 신생아 백일만 잘 넘기면 쪽잠은 자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까? 100일 아니라 백년이 아닌지 진심으로 두렵습니다.



그들의 꿈은 방해꾼


  하루하루 쌓이는 것 없이, 덧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바쁜 것일까요? 없는 형편에 큰맘 먹고 읽고 싶은 책도 몇 권 주문했습니다. 빠닥빠닥한 책 표지와 향긋한 새 책의 냄새에 가슴이 벌렁벌렁 설렙니다. 소중한 책을 담아 내게로 와 주었던 택배 박스도 고이 접어 감사함 담뿍 담아 분리수거함에 넣어줍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을 들어 몇 자 읽기도 전에 또 다시 저는 불리 워 집니다. 아 정말 이런 관심이 너무나 버거워집니다. 

  전쟁 같은 저녁을 보내고 나면 대망의 아이들 잠자리 시간입니다. 온갖 신경전과 암투와 계략이 난무하지만 결국 끝은 납니다.

  여기저기 치이면서 겨우겨우 소리 질러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거실에 작은 불을 킵니다. 마음 깊숙이 기쁜 한숨을 몰아쉬고는 아까 고이 모셔 두었던 책을 펴 봅니다. 또 다시 코끝에 전해지는 새 책 향기와 새 책의 감촉이 감동을 퍼부어 줍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꺼풀이 자꾸 내려오지만 그래도 책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해가 뜨면 또다시 자유를 빼앗긴 시간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폭염 때문인지, 에어컨 때문인지 아이들이 자꾸 밤에 깨어서는 이것저것 찾아대고 칭얼대고 재워 달라 아우성입니다. 정말 저 아이들은 내게서 자꾸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저러는 것일까요? 내 시간, 내 꿈, 내 의지, 내 노동력을 빼앗는 것이 재미있어서 저러는 것일까요. 저의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이 저 아이들의 목표인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억지라는 것을 알지만, 저도 사람이고 저도 세 아이의 부모 노릇은 처음인지라 가끔 그런 못된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불같은 눈길과 벼락같은 소리를 퍼붓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저를 항상 몇 배로 후회하고 탓하곤 하면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