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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녀의 하루엔 무슨일이 생겼나_2

커피

  뚫어질세라 쳐다보던 노트북을 과감히 덮고, 커피 한잔을 탔습니다. 외국커피라고 들이밀고는 있지만 그래봐야 믹스커피일 뿐입니다. 그래도 막 심하게 달디 단 우리나라 노랑믹스 보다는 훨씬 향도 좋고 맛도 좋습니다.

  손에 잡히는 아무 컵에 한 봉지 후련히 털어놓고는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후루룩 부었습니다. 거실 가득 퍼지는 커피향이 커피를 맛보기도 전에 만족감을 하나 전해줍니다. 뜨거운 물을 한 컵 가득 부어넣고는 휘저을 스푼을 찾는 것도 귀찮아 그냥 미스봉지로 휘휘저어 뜨거운 커피 향을 한 번 더 내어줍니다. 이제부터 시작될 폭풍 같은 오후를 이렇게 맞이합니다.


  빼 곡이도 마구 어질러진 식탁을 마주하고, 나름의 한가함을 찾아보겠다고 커피 잔을 올려놓아 봅니다. 하지만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넘기기도 전에 전화가 울려댔습니다. 딸아이의 귀가, 아니 행차를 알리시는 전화입니다.

  한가함이고 뭐고 커피한잔을 막걸리 마냥 취하기라도 하겠다는 기세로 죽 들이키고는 ‘흐이 짜!’하며 허리를 폅니다. 내 옆구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대 걸레를 꽈악 움켜지고는 전투모드로 전환합니다. 뜨거운지 단지 쓴지도 모르게 들이켰던 커피가 그 사이 제 할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카페인이 온몸 구석구석에 행군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오늘 오후도 역시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봅니다. 고마운 녀석입니다. 


청소봇

  여섯 명이서도 좁지 않을 만큼의 넓은 집 구석구석에 쑤셔 놓아진 온갖 물것들을 속속 제자리에 안착을 시킵니다. 각 방에 널려진 빨래가지들을 모아 빨래 통 아가리에 넣어주고, 일정량의 빨래는 또 세탁기의 아가리에 부탁을 합니다.


  막내아이의 예술 혼에 불타는 수십 수백 장의 낙서 장들을 가지런히 모아 분리수거함에 넣으려다 멈칫합니다. 이 본인도 주제에 엄마랍시고 딸아이 어린 날의 추억을 이리 처박아 버려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해 보지만 역시나 창고 따위는 없는 현대조선인에겐 추억저장은 무리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수천 장을 저장해도 부피는 변하지 않는 카메라가 있지 않은가하는 아이디어에 스스로 취얼 업 합니다. 미친 듯이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던 여자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막 찍어대자, 뭐 이런 일이 있나하는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조금 창피한 감이 든 것은 왜 일까요. 찡긋 한 번 웃어주자,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제할 일을 하기 시작하기에 저도 역시 계속해서 버튼을 수십 번이나 눌러대는 것에 열중했습니다.

  정말로 수십 번의 버튼을 누르고는 회심을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로서 나는 어린 날의 추억까지도 저장해주는 감성 가득한 어미로 거듭난 것이라며 스스로 칭찬을 마지 않습니다.


  스스로 엄청난 토닥임이 끝나자 ‘띠링’ 현관문이 열리며 센서 등이 들어왔습니다. 큰 아이의 행차이십니다. 저는 더욱 서둘러야 했습니다. 큰 아이에게 자신의 이부자리와 매트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온 집안을 마대걸레와 함께 속속히 처리해 나갔습니다. 실로 나라는 인간이 청소재능이 남다른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와 정리를 해 내었으니 나의 노고에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감기님 행차

  그리고 이제는 저 아이들을 모두 준비시켜서 차에 오릅니다. 또 다시 찾아온 환절기가 가져다 준 반가운 손님 감기님을 마중하러 소아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