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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그녀의 하루엔 무슨일이 생겼나_3

 식탁 위에는 어제 먹던 커피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제 아이의 병원에서 학원으로 가기 전에 아이에게 간단한 요기를 시킬 요량을 패스트푸드에 갔었습니다. 언제였는지 지금의 큰 아이가 어릴 적에는 그런 것들을 먹이는 것이 커다란 죄인 양 손 사레를 치며 극도로 조심했던 기억이 추억처럼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은 감자튀김을 저는 원두커피 ‘대’자 하나를 사와서는 차에 올랐습니다. 살 때는 커다란 컵에 담긴 그 커피를 모두 마셔주겠다는 호기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쯤 마시고 난 후에 쓰려오는 제 위장 때문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그 커피가 차갑게 식은 채로 식탁위에 올려져있었습니다. 지난밤에도 새벽 4시가 다 된 시각에야 잠자리에 누웠던 저 인지라 아이들을 등교 시킨 후에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비틀비틀 몽롱한 머릿속을 채찍질하기엔 차갑게 식어서 더욱 쓴 맛을 내는 흡사 사약과도 같은 저 커피가 딱 특효이리라 하는 생각을 하며 한 동안을 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술 혼

  아직은 아기 티를 벗지 못한 막내아이가 저를 마냥 불러댑니다. 아침 해를 받으며 혼신의 예술 혼을 또 불태웠나 봅니다. 바닥엔 알록달록한 크레파스의 향연이 그득했습니다. 속으로 ‘하!’ 저것들을 또 어찌 처리해야 된다는 말인가 하는 탄식이 일었지만, 두 손 크게 엄지를 척 내어주며 ‘세기의 화가님’이라고 환호성을 보내주었습니다.

  애미의 오버가 만족스러웠는지 본인도 조그마한 엄지손가락을 올리시고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이쯤에서 치우려 했던 저의 속셈은 당연히 모르시는 눈치로 다시 한 번 크레파스를 한 움큼 집어 올립니다. 


청소귀신

  마냥 천진한 난장판을 만드는 아이를 뒤로하고 저는 큰 아이들 방에 널 부러진 이부자리와 옷가지들을 또 한 번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저것들을 언제 다 치우나.’

 ‘저것들은 모두 치울 힘이 나에게 지금 있나?’ 

 ‘지금 저것들을 모두 치워도 시원한 깨끗함도 잠시 조금 있으면 다시 똑같이 되겠지?’

 ‘그런데 내가 저것들을 치우는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도 치우지 않으면 지금 내 속에서 일고 있는 이 껄끄러움은 열배가 되겠지?’ 

 ‘그래도 힘이 드는데 눈 딱 감고 치우지 말아볼까?’ 

 ‘아이들 하교 하면 치우라고 할까? 지들이 한 건데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러면 결국엔 하루 종일 저 이부자리는 저 곳에 있을 테고,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 들어온 김 과장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

 ‘또 나를 게을러빠진 불어버린 여편네라고 생각하겠지? 그건 정말 싫은데.’


  생각이 생각을 물어 결국 제 팔다리는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정리 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마구 헝클어진 담요를 한 번, 두 번, 세 번 포개어 올려놓고, 여기저기 널려진 베개를 던져 넣고, 각도가 완전히 틀어져버린 깔개패드를 접어올리고 폭신한 라텍스매트까지 정리해서 올려 넣고 나니 숨이 찼습니다.

  커다란 이부자리가 정리되어진 방에는 아이들이 밤새 잠옷으로 입었던 옷가지들이 마구 뒤집히고 구겨져서 널려져 있었습니다. 제발 자고 난 잠옷이라도 똑바로 펴서 의자에라도 올려놓아달라고 그렇게도 부르짖었었는데 말입니다. 역시나 아이들의 귀는 아직도 발달이 덜 되었나봅니다.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는 선택적으로 잘 들리지 않은가 봅니다. 혹시라도 내 말이 무시되었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던 것도 잠시입니다. 돌아보니 그래도 휑하니 정리되어진 방을 보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조금 전의 고민이 창피해지는 순간입니다.